
세계사의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신냉전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은 '안보'와 '신뢰'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관세정책'과 '반도체법'은 자유무역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환경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새로운 보호무역주의의 얼굴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세계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골목경제의 비명, 취약계층의 눈물
대한민국의 자영업자들은 이미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경제활동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경기전망지수는 2022년 대비 23% 하락했다. 이는 단순한 지표가 아니라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가장의 한숨이다. 서울 명동 상권 공실률 21.5%, 인천 부평 24.1%, 부산 남포동 26.3% 등이다. 한때 활력이 넘치던 곳들이 텅 빈 상가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건설경기의 한파는 더욱 매섭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착공 건수는 5년 전 대비 32% 감소했고, 미분양 물량은 7만 호를 넘어섰다. 콘크리트 믹서가 멈추면 경제의 심장박동도 함께 느려진다.
두 세대의 절망, 청년과 노인이 함께 울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이제 'N포세대'로 불린다. 포기한 것이 너무 많아 셀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2025년 4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8.7%로 공식 집계되지만, 체감 실업률은 20%를 훌쩍 넘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채 '취준생' 신분으로 2~3년을 보내는 청년이 30만 명에 육박한다. 그들의 젊음은 대기실에서 소진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노인 빈곤은 OECD 국가 중 최악 수준이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평균 61만 원, 기초연금을 추가해도 90만 원에 불과하다. 78세 김모 할아버지는 "폐지 수거로 하루 7천 원을 벌지 못하면 그날은 한 끼를 굶는다"라고 말한다. 산업화의 주역들이 이렇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더 비극적인 것은 자살률이다. 2024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3.6명으로 OECD 평균의 2배를 넘는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46.1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삶의 시작과 끝에서, 두 세대는 모두 절망하고 있다.
정치적 혼란, 신뢰의 실종
2024년 말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진 정치적 격변은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국회는 민생법안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동안, 국민의 삶은 더욱 어려워져만 간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청년 자립 지원 확대 정책'은 예산 배정조차 되지 못했고, 고용노동부의 '고령자 고용 장려정책'은 행정 공백으로 표류하고 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 다툼이 아니다. "국민이 왜 정치에 실망하는지 아십니까?" 어느 자영업자의 이 물음은 정치의 본질을 일깨운다. 국민은 정쟁의 승자가 누구인지 관심 없다. 오직 자신의 삶이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수출 강국의 위기,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
대한민국은 GDP 대비 수출 의존도가 35%를 넘는 국가다. 그러나 글로벌 통상환경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2024년 기준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17% 감소했고,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 여파로 대미 수출도 줄고 있다. 환율 리스크는 더욱 심각하다. 원·달러 환율은 2025년 5월 10일 기준 1,398.50원을 기록하며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금과 같은 환율 불안정과 통상 리스크는 중소 수출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외교·통상 전략의 근본적 재정비가 절실한 이유다. 대한민국은 국제무역의 바다에서 노 젓는 작은 배와 같다. 파도가 거칠어질수록 더 정교한 항해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통상 전략은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절벽과 혁신의 정체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중 68%가 "올해 설비투자 계획이 없다"라고 답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그룹 모두 2025년 상반기 국내 투자 규모를 축소했다. 기업들이 미래에 베팅하지 않는 나라에 어떤 미래가 있겠는가? 벤처캐피털 투자 역시 2024년 대비 32% 감소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혁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도전을 지원하지 않는 사회"라며 좌절감을 토로한다.
0.68의 충격, 사라져가는 미래
2024년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6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출생아 수는 19만 7천 명으로 사상 처음 2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는 국가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다.
게다가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의 20.1%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40년까지 복지 지출이 세수 증가율을 초과할 것"이라며 재정 건전성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인구는 국가의 근간이자 미래다. 출산율 하락과 인구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연금과 의료비 부담 급증, 지방소멸로 이어진다. 이대로라면 "번영했으나 사람이 없는 나라"라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위기가 곧 기회다. 필요한 것은 다음 다섯 가지다. 첫째, 실용과 협치의 정치 회복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 국가발전위원회'를 통해 저출산, 고령화, 성장 전략에 대한 장기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둘째, 과감한 규제 혁신이 시급하다. 신산업 분야에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확립하고, 인공지능 기반 핵심 사업, 휴머노이드사업, 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차세대 반도체, 친환경 에너지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셋째, 청년과 노인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청년들에게는 주거와 일자리를, 노인들에게는 노후 소득 보장과 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적극적이고 실리적인 외교·통상 전략이 중요하다. 미·중 갈등 속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헤징'과 함께, 인도, 아세안,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경제 협력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다섯째,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와 취약계층 보호는 사회 통합의 기반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이다.
다시 일어서야 할 때
지금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수십 년간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룩했던, 그 찬란했던 한강의 기적이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도약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그 에너지와 저력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는다. 빈손으로 폐허에서 일어선 민족이 이 정도 위기를 이겨내지 못할 리 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답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는 담대한 결단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대한민국이 어디로 향할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