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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6.25의 노래’를 잊고 있다. 부르지도 않고 있다. 72년 전 6.25전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노래다. 6.25전쟁은 북한 공산군이 암호명‘폭풍’이란 이름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불법 남침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사흘 만에 서울을 뺏겼다. 물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되찾았지만 정전협정이 이뤄진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무려 1,129일 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72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중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진행형이다. 전쟁이 끝난 것처럼 착각하고 살 뿐이다. 엄연히 38선을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핵전쟁의 위협까지 받고 사는 험악하고 살벌한 대치 상황이 끝나지 않고 있다. 틈만 나면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러 남침을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파죽지세처럼 쳐들어오는 북한군의 기세에 밀려 남한 땅을 다 뺏길 위기에 처했었다. 유엔군이 참전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세를 뒤집었지만, 6.25전쟁의 악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연한 역사다. 북을 아군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 모든 것을 ‘6.25의 노래’는 함축하고 있다.
지난 어느 정권 시절 ‘6.25의 노래’가 국민이 부를 수 없는 금지곡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10년간 금지곡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이 노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심지어 가사까지 바뀌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6.25의 노래’ 원곡은 박두진 시, 김동진 곡이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1절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절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3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다시 오지 않게 하리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노래는 기성세대들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입이 닿도록 부른 노래다. 6.25전쟁이 북침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을 부르며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표찰도 학창시절 가슴에 달고 살았다.
그렇다고 하면 이른바 ’신 6.25의 노래(심재방 지음)‘를 보자.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 나던 날을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 시리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번영 위해 민족의 공적과 싸우고 또 싸워서 통일의 그날이 기어이 오게 시리 (후렴) 이제야 이루리 그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피의 원한 풀어 하나의 겨레로 이제야 이루리 한나라 한겨레‘이렇게 되어 있다. 6.25전쟁을 치른 세대들이 이를 보면 소름이 돋고 지하에서 호국영령들이 분통을 터트릴 참으로 황당한 노래다. 6.25전쟁의 민족 최대 비극사를 왜곡하고 전쟁책임이 있는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씌어주는 이런 황당한 ’신 6.25의 노래‘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어떻게 이런 노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거세다. 이는 종북좌파들의 노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1절에는 북괴군이 남침했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남북한이 총칼을 들이댔다는 정황만 나열했다. 2절에는 6.25전쟁의 책임이 북한이 아니라 ’외세‘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유엔군의 참전이 누구 때문인지를 왜곡하고 있다. 3절은 민족의 공적과 싸워서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족의 공적이 과연 어디를 말하고 있으며 왜 이런 내용을 담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가사 내용을 갖고 6.25전쟁을 제대로 설명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공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지 짚어보면 불문가지다. 이런 교육이 전교조를 통해 세뇌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할 일인지조차 의아할 정도이다. 역사를 잊는 것을 넘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세력들이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 땅의 공산화인지 말이다.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가 담긴 ’6.25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어놓다가 ’신 6.25의 노래‘라는 황당한 노래로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의 인명피해는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피해 규모를 보면 군인 17만 927명 전사, 3만 2,585명 실종, 56만 6,434명 부상, 민간인 100만여 명 사상 추정된다. 군인과 민간인이 250여만 명이 사망했다.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호남지역의 학살피해자는 8만4,003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학살피해자 12만8,936명의 65%에 이른다.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 학살을 말한다. 참전국의 피해도 크다. 참여 유엔국가는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호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그리스 등 16개국이다. 특히 미국의 참전 규모가 참전국의 80% 정도로 차지할 정도로 매우 컸다. 유엔군 전사자만도 3만3,700여 명에 이른다, 국군 전사자 13만7,900여 명을 생각하면 남의 나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엄청난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산화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가족을 잃고 헤어져 이산가족의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 비극의 역사가 6.25전쟁이다. 이를 잊는다고 잊을 수 있으며 왜곡한다고 왜곡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 중의 착각이고 망상일 뿐이다. 72년이 지난 지금 역사를 왜곡하는 종북좌파들이 날뛸 때 현충원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묘비가 그날의 비극적인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요즘 아쉬운 것은 젊은이들이 의식 수준이다. 역사를 잊은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지 참으로 아리송하다. 17일 오전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형산강 전투의 영웅 연제근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에서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 참석자들이었다. 구순은 넘긴 수훈의 참전용사들과 유관 기관단체 원로들이 노구를 이끌고 추모식을 참석해 6,25전쟁을 회상하고 추모하는 모습은 시대적 아픔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과 아직도 살아 계신 90대 영웅들이 오늘의 이 나라를 지킨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라나는 세대와 젊은 세대들을 왜곡된 역사로부터 보호할 절박한 시점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포장하여 살아있는 전쟁 세대들을 우롱하는 역사적 경거망동은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김일성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예비역 이진삼대장이 살아계신다. 남침 땅굴까지 찾아내어 엄청난 공적을 이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육탄용사호국정신선양회와 UN한국전참전국친선협회, 대한항일순국열사회 총재로 젊은 세대들과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이진삼 총재와 함께 하는 유법안 스님은 전국에 100여 곳에 달하는 6.25전쟁 관련 기념탑을 사비까지 투자해 건립하고 호국영웅의 참뜻을 기리고 있다. 조만간 미육군 싱그러브장군 공적탑 제막식도 거행한다. 무엇보다 6.25 전쟁사를 정립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유법안 스님은 용산전쟁기념관의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참뜻이 담겨야 한다는 의미가 공감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역사는 왜곡이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인 듯하다. 역사를 잊지 않도록 오래 간직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애국애족의 마음이자 우국충정이다. 6.25전쟁의 격렬했던 전국의 전투 현장에는 유법안 스님의 애국애족 정신이 서린 기념탑이 우뚝 서고 있다. 유법안 스님의 애국애족 정신과 6.25전쟁사의 올바른 기술에 대한 헌신적인 열정이 이 시대에 빛을 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유법안 스님의 위대한 행보가 왜곡된 역사관이 판을 치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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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를 말한다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흉악 범죄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질환 유형에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것이 있다. 가끔 언론에 회자되면서 비정상적인 인물들에 대해 이를 적용시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성문제와 더불어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그 대상이다.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인면수심의 범죄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같은 듯 다른 두 가지가 바로 소시오패스(sociopath)와 사이코패스(Psychopath)이다. 쉽게 말하면 전자는 후천적이고 후자는 선천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는 둘 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닮은 듯 다른 질환인 것이다. 또 소시오패스는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이코패스는 뇌의 이상이나 유전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를 뜻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란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이다. 특히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역시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 없고 타인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충동적이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기질로 태어나 공감 능력의 결여로 범죄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잘못된 행동이란 것을 알면서도 반사회적 행위를 한다.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소시오패스다. 소시오패스는 정상인의 기질로 태어나지만 유년기 시절이나 사회생활 중 결핍요인에 의해 성격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다. 이들은 계산이 빠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감정 조절이 뛰어나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평범한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소시오패스는 전 인구의 4%라고 알려져 있다. 주변 25명 중에 1명은 소시오패스인 것이다. 소시오패스 중에는 상류층 인사와 유능한 직업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다.
소시오패스(sociopath)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 호감을 쉽게 얻는다. 하지만 이들의 공감은 정서적 공감이 아니라 인지적 공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이에 주변 사람을 조종하며 착취하는 기생적 인간관계를 맺곤 한다. 또한 거짓말을 하는데 능숙하다. 일반인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들통날까봐 긴장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양심이란 사전 속 단어이기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 기질이라 그렇다고 해도 소시오패스는 정말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다. 각종 살인사건을 통해 볼 때도 그렇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를 비롯해 존속살인 사건, 각종 방화사건 등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나 없는 사실을 꾸며 다른 사람들을 음해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인 행동의 인물들 속에서 소시오패스의 모습이 보인다. 심지어 해외에서 같은 나라 사람이면서도 교묘하게 접근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속여 등쳐먹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부류이다. 중국 등 해외에서 조심해야할 사람의 1호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볼라치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을 보게 된다. 다양성을 떠나 악질적인 행위로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가 이처럼 혼돈스럽다. 내로라하는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영창에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끗발이 좋긴 좋다. 문제는 사건이 존재하는데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묵언수행(默言修行)하듯이 회피하거나 아니면 동문서답을 하면서 딴전을 부리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억울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핍박을 받는 사람 행세를 하면서 모든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양 호도하고 있다. 자신은 떳떳한데 다름 사람들이 죄를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는 듯이 동네방네 언론사마다 쫓아다니며 빈 수레처럼 요란을 떨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 현직 정당대표들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검찰과 경찰의 소환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적 스트레스다. 본인들은 마치 핍박을 받고 있는 것처럼 출두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무슨 전쟁을 치를 듯이 요란을 떨고 있지만 이는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떳떳하게 조사에 임하고 결백을 밝히면 된다.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법이 존재한다. 법대로 하면 된다. 밖에서 매화타령만 해서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 공권력이 할 일이 없어 죄도 없는 사람을 오라 가라 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비정상이 정상인양 돌아간다면 그것은 큰일이다. 이런저런 일로 벌써 사람이 한두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겠는가를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면 이는 앞서 말한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다. 잘못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교묘한 거짓말로 본질을 호도하려는 행태를 보인다면 이 역시도 소시오패스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가 정신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인지를 지켜보고 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좌경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팩트를 갖고 정론직필을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조작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것은 사이비언론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을 속이는 언론은 이미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언론도 소시오패스 언론에 다름 아니다. 언론과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무엇인지 늘 1인치가 빈 채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볼라치면 인성교육이나 준법교육이 다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의 형사사건 문제는 앞으로 소시오패스를 보게 되는지 아니면 탄압받는 모습을 보게 되는지 둘 중의 하나는 분명 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 말들과 행동거지로 진실게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는 옛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구나하는 깨달음도 분명 던져줄 것이다. 국민들은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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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와 사후약방문
생활고와 투병에 지쳐 수원의 세 모녀가 세상을 등졌다. 60대와 40대 모녀들이다. 암과 희귀병, 그리고 생활고에 복지서비스는커녕 세상에 그 흔한 도움의 손길도 없었다. 유서를 남기고 절망 속에서 세상을 마감하는 그 고통의 순간이 참으로 참담하고 눈물겹다. 세계 무역대국 9위, 10위권 경제대국을 자랑하는 이른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오늘날의 모습이다. “아프리카를 돕자! 필리핀을 돕자!”하면서 방송에는 연일 비참한 외국아이들의 모습이 화면을 통해 등장한다. 이들을 향한 사랑이 정작 내 나라 내 이웃에는 왜 미치지 못하는 가를 생각할 때 무엇인가 모순덩어리를 보는 듯하다. 복지사각지대에서 암울한 삶을 살아가는 위기가정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이런 유사한 비극적 사건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한다며 난리를 피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모두가 그렇다.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뒤늦게 호들갑인지 묻고 싶다. 사후약방문 행정과 뒷북행정에 복지 분야를 따라갈 분야가 없는 것 같다. 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복지행정은 있으나 체감복지는 탁상에만 있을 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4일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나 장기 체납, 금융 연체 등 34종의 위기정보가 입수된 이들 숫자는 약 544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복지부가 선별한 위기가구 발굴 우선순위 명단은 12만3,000명,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인원이 8만2,000명이다. 정부는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거주지가 불분명한 위기가구를 실종자에 준해 소재를 파악하기로 했다. 경찰이 아동, 치매 노인, 정신장애인 등을 법적 근거에 의해 소재를 파악하는 것처럼 위기가구도 관련 법적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현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전문가 의견도 청취했다.
이미 각 기초지자체 중 95.2%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해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을 설치했다. 그러나 인력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54%만 충원된 상황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면서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에 배치됐던 간호 인력이 코로나19 대응 업무 쪽에서 많이 배치돼 있다. 정부는 복지전문가 간담회의견을 토대로 행정안전부, 경찰청,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협업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개선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탁상행정에 그치고 임시방편에 그친다면 비극의 악순환은 거듭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은 8년 전인 지난 2014년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 자살사건과 너무나 유사하다. 당시 세 모녀는 60세와 30대 모녀 일가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메모를 남겼다. 큰딸의 만성질환과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번 사건도 어쩌면 이렇게 유사한 사건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당시에도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해 돕는다며 난리를 피웠다. 요란한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리고 마치 복지사각지대를 단숨에 없애버릴 것 같은 전시행정이 펼쳐졌다. 지난 2015년에는 실직한 가장이 서초동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후 도주하다 체포된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상대적 빈곤이 불러온 비극적인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는 잠재되어 있는 위기가정이 너무나 많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늘 복지정책의 보호벽에서 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위기가정들은 수원 세 모녀나 송파 세 모녀사건처럼 사면초가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 사실 빚으로 사는 가정들이 너무나 많다. 불안정한 직장도 마찬가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직장에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가장들의 고통이 곳곳에서 목도된다. 겉으로만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있지만 톡 건들면 터질 것 같은 가정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풍요로울 것 같은 대한민국의 상황은 이미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구조로 향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다.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지 못한 계층들은 늘 불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들도 그런 세상이다.
여기에다 시골이나 중소도시, 대도시 할 것 없이 외국인 근로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의 일자리를 남의 나라 사람들이 와서 차고 앉아 있으니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이른바 3D업종이라고 해서 기피업종이라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이 일을 기피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기형적인 일자리 구조가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와 경제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불안한 사회와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소외계층과 취약계층을 양산하고 위기가정으로 내몰고 있다.
심지어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해 대한민국의 1인 세대가 946만1,695가구로 급증해 전체 주민등록인구의 40%를 넘어서고 있다. 1,000만가구가 나 홀로 사는 가구이다. 특히 70대가 가장 많다. 불안정한 가구형태가 아닐 수 없다. 질병에서부터 정신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상성을 벗어나고 있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약칭 기초생활보장법)이 가장 획기적으로 변화된 계기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개정법이 제정 시행되어 왔다. 그런데도 이런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허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위주의 정책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재난지원금을 줄때도 그래왔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위기가정들이 이를 넘보지도 못했다.
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수급 이력 없는 주거지 미상 위기가구도 유관기관과의 정보연계 등을 통해 끝까지 찾아내어 지원토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허겁지겁 이것저것 처방전을 내놓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들해져 온 것이 지난 과거의 복지행태이다. 사후약방문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민들은 지금 세 모녀의 비극에 고통의 눈물을 짓고 있다. 1인 가구를 포함해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는 가정들도 더더욱 그렇다. 모든 정책과 행정이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세 모녀를 추모하기 위해 빈소에 시민과 정계인사 등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뒤늦은 관심과 추모는 뭔가 개운치 못한 여운을 남겼다. 국민들이 이런 고통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눈만 뜨면 권력 다툼과 갈등, 대립에 혈안이 되어 있다. 나아가 불법과 탈법, 비리로 이전투구를 일삼고 있다. 등 가려운데 발바닥을 긁고 있다.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송파 세 모녀 사건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발생한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모진 환경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법이 없거나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국민을 위한 진정한 눈물과 헌신적 봉사자세가 결여된 때문이다. 곳곳에 복지단체가 즐비하고 복지재단이 들어서 있다. 복지관 등에는 지원 예산과 후원이 넘치는데도 빈익빈부익부 복지로 고통 받는 국민들이 위기 속에서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전면적인 대수술이 시급하다. 복지재단을 없애고 복지관도 정리하고 복지체계를 전면 개편해 복지예산이 실제 어려운 이웃,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예산 중에 가장 많은 것이 복지예산이다. 올해 복지예산은 교육과 고용분야를 포함해 무려 200조가 넘는다. 하지만 100원을 주면 90원은 인건비 등 각종비용으로 중간에서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10원만 돌아가는 복지정책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복지 분야의 정리정돈 없이는 진정한 복지정책이 위기가정에 제대로 투영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복지시스템은 곧 직거래장터와 같은 실질적인 복지직거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송파에 이은 수원 세 모녀사건이 뼈아픈 교훈으로 던져주고 있다. 말로만 복지사각지대근절이란 사후약방문격인 탁상복지행정은 이젠 그만 멈춰야 할 때다.
202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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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과 윤리의식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은 국민 앞에 나서면 기본적으로 윤리강령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 공무원은 물론 법관, 기자, 정당인 등에 이르기까지 윤리강령을 준수하도록 명시하여 이를 윤리의식과 도덕적 기준을 삼고 있다. 이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청렴한 공직사회 풍토를 조성하여 국민을 위해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갖고 바르게 일하라고 하는 지침서에 다름 아니다. 기자들도 취재활동으로 얻은 정보를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고 공인으로서 윤리, 도덕적 규범에 벗어난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윤리강령이 있다. 입법과 사법, 행정 등 그 어느 부처에서도 윤리강령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청렴하고 올바른 공직자상을 정립하여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공인이자 선출직 공무원, 국회의원, 정당인 등 모두가 대상이다.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패하고 타락한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래서 부정부패하고 시정잡배와 같은 그릇된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은 인물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무슨 개그대회를 열었나 싶을 정도로 수준이하의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어섰지만 정치만은 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흐리게 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여당의 전임 대표라는 젊은 정치인이 보여주는 작태는 한마디로 목불인견이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이야기인지 알다가 모를 지경이다. 이곳저곳 온갖 신문방송을 찾아다니며 갖은 변명과 험담, 궤변으로 연일 쌈판을 벌이고 있다. 자기주장만 늘어놓고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성상납의혹 등을 질문하면 대부분 딴전을 피우고 있다. 윤리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에는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하면서 대통령을 포함하여 자기 당의 반대세력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몰아세우고 있다. 그것도 지나간 일들을 늘어놓으며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형국이다. 과연 이런 정치인이 그리는 대한민국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교도소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은 이 인물에게 성상납을 했다는지 접대를 했었다느니 하면서 폭로전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도 동문서답이나 하며 좌충우돌하면서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을 내며 마치 정의로운 사람인양 국민을 향해 온갖 교언영색을 쏟아놓고 있다. 추잡한 싸움과 언행에 국민들은 이미 식상해 있다. 지금까지 이런 정치풍토는 없었다. 정치인의 이중성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지적이 거세다. 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당 정치인들은 하루속히 정치판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자칫 국민 불행의 단초가 되고 대한민국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야당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법카문제, 대장동문제, 변호사비 대납문제 등 온갖 불법 비리 사건이 눈만 뜨면 속보로 전해지고 있다. 어느 것은 공소시효가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수사 중’이다. 일반 서민 같았으면 벌써 교도소에 들어앉아 있을 사안인데도 그렇다. 권력자들에게는 약한 법인지 아니면 철저한 수사를 위해 신중한 처리절차를 밟고 있다는 이야기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둘러싼 수사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정국은 또 한 차례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문제는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공권력이 나서서 올가미를 씌우고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느냐’는 말이 있다. 이것저것 드러나는 것은 보면 단순사안은 분명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주변 인물들은 이미 감옥에 들어앉아 있거나 해외로 나갔다. 상황논리로 보아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일부는 세상을 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정치판이 이 모양 이 꼴로 본질을 벗어나 추한 문제로 소모적인 나날을 보내야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치혐오증만 날로 심해지고 있다.
지난 19일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이 벌어졌다. 월성원전 조기폐쇄문제와 탈북어민 강제북송의혹 등과 관련해서 전 정권의 청와대의 의사결정과정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분명 무엇인가 문제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30년 이후에나 들여다볼 수 있다는 문건을 고등법원의 영장을 받아 전격 압수수색하는 것을 보면 결코 단순치 않은 사안임이 분명하다. 범법과 불법사실이 있다면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정치탄압이니 뭐니 하면서 허튼 수작을 부리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에서 적폐 척결대상 1호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보고 시점 조작혐의와 관련 전 정권의 비서실장 등 3명이 대법원의 무죄취지파기 환송, 무죄확정의 판결을 받았다. 이는 적폐몰이에 억울한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법 앞에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 권력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무죄인데도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불법행위자들을 눈감아주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특히 권력자들은 가중 처벌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들이 옥고를 치렀거나 치르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법 앞에는 예외가 없다. 법대로 하면 된다. 윤리강령은커녕 인권을 유린하고 잔혹한 범죄행위까지 저질렀다면 이에 상응한 법적 처벌을 그 누구도 받아야 한다.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누가 범법자들인지를 말이다.
이런 저간의 문제는 공인의 윤리의식이나 도덕불감증에서 비롯된다. 국민을 무서워하고 국민을 위해 청렴하게 봉사 헌신하고자 하는 의식이 결여된 때문이다. 권력자로서 국민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세월을 보낸 탓이다. 국민을 한순간 속일 수 있지만 준엄한 역사는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추한 모습들은 자라나는 후대들이 보고 배워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기성세대들의 자성과 각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청년정치를 부르짖으며 나선 설익은 인물들의 추태 또한 ‘아니올시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정치권의 추태는 공인의 윤리의식과 도덕불감증, 탐욕과 교만이 불러오는 술수정치의 산물로 척결되어야 할 적폐 중에 적폐임이 분명하다. 올바르지 못한 정신과 그릇된 윤리의식으로 이중성을 보이는 공인들의 각성은 당연하다. 나아가 이런 인물들은 하루속히 국민 앞에서 사라지길 촉구한다.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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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
115년 만에 중부지방 일대에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면서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수도권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7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도로와 지하철이 침수되고 산사태가 발생해 재산피해도 컸다. 서울 강남일대는 물바다를 이뤘다. 참으로 황당한 사태를 빚었다. 강남역을 중심으로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배수시설로 인해 물이 빠지지 않고 역류를 하다 보니 도로가 물바다를 이룬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국이나 일본의 집중호우에 대한 피해가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 들렸지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한마디로 물 폭탄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강원도 쪽에서도 커다란 돌덩어리가 마치 종이배처럼 급류에 흘러갈 정도였다. 반지하나 맨홀에서 황당한 사망사고가 발생해 안타까움도 더했다. 강남에는 시간 당 140밀리의 비가 쏟아졌다. 홍수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과 청주, 군산까지 물난리를 겪었다. 이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했다. 준비를 미리 해 두면 근심걱정이 없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가 없다면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에 물바다를 이룬 강남 침수원인에는 빗물터널이 6개에서 1개로 축소되고 빗물펌프장도 집값이 떨어진다며 유야무야됨에 따라 기반을 다져놓지 못한 때문으로 드러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유비무환을 생각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한 것에 다름 아니다. 행정기관이나 주민들 모두가 이처럼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2011년에도 똑같은 침수가 있었는데 알면서도 피해를 당한 것이다. 강남역 일대는 상습적인 침수구역으로 지목되고 있는데도 개선은커녕 속수무책으로 침수피해를 당했다. 이런 물난리는 근본적으로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한다. 주택 상가 침수피해만도 3,819채로 집계되고 차량도 6,000여대가 침수됐다. 피해자들은 그야말로 망연자실이다. 집중호우는 수도권에 집중되긴 했지만 강원도 충북일대에도 수마를 남겼다. 홍수에 대비하는 자세가 자칫 요식행위에 그친 채 안일하게 대처해 온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서울의 강남이 10년의 허송세월을 한 것을 보면 안전의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안전대책예산을 무책임하게 잘라 다른 곳으로 전용하는 우를 범해 왔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본과 중국에서 물난리를 겪고 심지어 베트남 하노이도 36년 만에 최대 강우량을 기록하며 물난리를 겪었다. 필리핀 세부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보면 동남아시아 전 지역에서 위아래를 오가면서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번 서울과 수도권 등 중부지방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앞으로 유사한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고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8호 태풍까지 일본을 향하고 있다. 또다시 집중호우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것은 기록적인 물 폭탄으로 약해진 지반으로 인해 다시 폭우가 쏟아질 경우 연쇄적인 산사태나 붕괴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취약지역을 다시 점검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 방심을 하거나 만심을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이런 점에서 유비무환 자세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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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 모두가 유난히 무덥고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지쳤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는 어김없이 여름은 보내고 있다. 올 여름은 코로나마저 다시 극성을 부려 자유로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그래도 예전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거리낌 없이 환담을 하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들이 마치 코로나가 종식된 듯 느껴지는 요즘이다. 마스크는 습관처럼 쓰고 다니지만 코로나를 잊은 듯하다. 아무튼 엄청난 변화의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되찾기 위해 모두가 안간힘을 다하는 듯하다. 여름휴가도 예전처럼 이어지고 있고 모든 것들이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는 물가폭등이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마음 졸이게 하던 태풍도 일본 쪽을 강타해 많은 피해를 낳았지만 우리나라는 무더위를 식히면서 비켜가고 단비만 내리고 갔으니 참 다행이다. 이제 풍요로운 가을을 맞을 마음만 준비하면 된다.
가을을 향한 마음은 추석과 같이 한다. 다음달 10일이 추석이니까 참 빠른 것 같다. 8월이란 달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하다. 올해는 지방선거와 대선이란 큰 선거를 치렀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8월이 빠른 것이 아니라 세월이 빠르게 지나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이 대거 교체되고 대통령도 교체되어 중앙이나 지방정부도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가을 향한 풍요로운 마음 같은 여유가 보이질 않는다. 물가는 폭등하고 부동산은 휘청거리고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으니 입추를 맞는 마음이 어둡기만 하다. 무엇인가 역동적이고 활기찬 사회상을 기대하고 인내하고 살아왔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으니 답답한 심경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삶이 그렇다. ’투잡‘, ’쓰리잡‘을 해야 먹고 살수 있다는 하소연이 예사롭지 않은 경제상황을 엿보게 한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나는 것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IMF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주변의 말들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은 이유이다.
이런 나라꼴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정치는 늘 밥그릇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집권여당이라는 정당의 꼴을 보면 마치 삼류영화를 보는 듯하다. 퇴출수순을 밟고 있지만 대표라는 작자는 갖은 몽니와 투정을 부리며 노상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무슨 성상납 의혹이니 증거인멸이니 하면서 추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아예 이런 것들은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듯이 행동을 하고 있다. 아무 문제가 없는데 윤리위가 징계를 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윤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하다. 대표라는 인물이 이럴 진데 집권정당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겠는가는 불문가지이다. 정치세력을 키우기에만 골몰하고 대통령과 맞장 뜨려는 식의 언행을 일삼고 있으니 인성과 품성을 곱게 볼 수만은 없다는 여론이다. 눈만 뜨면 총질만 해대고 있다. 언론은 이를 침소봉대하고 있으니 삼류영화는 끝날 줄 모르고 있다. 비정상의 연속이다.
독일 시인 안톤 슈낙이 1941년 펴낸 젊은 날의 전설에 실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산문이 작금의 우리 주변상황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경기도 이천병원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5명의 환자와 간호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 무더운 여름날 참으로 불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사고다. 경기도 이천에는 물류창고 화재 사건 등 화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참으로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다. 해마다 대형 화재사고로 인명피해가 끊이질 않고 있으니 경기도 이천지역에는 별도로 보다 철저한 화재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이를 통해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해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경기도 이천지역의 그동안의 화재참상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힘든 삶을 살아갈 때에는 희망을 주는 그런 인물이 절실하다. 과거에 IMF 경제위기 시절에는 골프선수 박세리가 있었고 메이커 리그의 박찬호, 류현진이 있었고 최근에는 유럽축구의 손홍민이 있다. 2002년에는 월드컵 4강신화의 감동이 있었다. 이런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순간들이 국민들에게 청량제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정치에 관한한 추악한 모습들만 연속되고 있다. 늘 싸움판이다. 특히 야당의 내로라하는 국회의원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의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도 아직도 ’수사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벌써 수 십 번은 교도소에 갈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감동은커녕 거짓말 퍼레이드를 보고 있다. 과연 법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두루뭉술 끝날 것인지 국민들은 감동 없는 수사드라마를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까운 목숨들이 4명이나 사라졌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관련 당사자들이란 점에서 그렇다. 참으로 비극이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코로나사태와 경제난, 고물가, 고금리, 저출산고령화, 취업난에 무더위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이 여름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여기에다 교육개혁이니 뭐니 해서 평지풍파도 일으켰다. 심지어 공무원인력감축이란 명분을 내세워 기존 공무원들의 업무상황이 힘겹게 되어버렸다. 시험을 분비하던 공시생들도 한마디로 뻥 쪄버렸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의 개혁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일선 말단 공무원들의 현업현장을 가보라. 지금의 상황이 결코 정상적이지 않음을 여실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순리에 의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입추를 거쳐 가을을 향하는 자연의 섭리와 순리처럼 모든 것들은 변칙과 편법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도 이제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와의 공존을 택하고 있다. 명심보감에도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하리라 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흥한다는 말이다. 정치가 됐건 경제가 됐건 모든 것이 순리에 어긋나면 탈이 나게 된다. 법이 있으면 법대로 하면 된다. 권력자이든 일반 국민이든 법은 똑같이 적용된다. 법을 어긴 권력자는 단호한 심판이 뒤따라야 된다. 지금 검찰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보면 정치권력의 불법행위로 인한 폐해가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입추를 지나 가을로 향하는 길목에 서서 국민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소해야 한다. 나라꼴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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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7년 개봉된 로맨스와 모험,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작품이 있다 영어로 'For Whom the Bell Tolls'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미국 문학을 개척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웅대한 현대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내전이 발발하자 통신사 특파원 자격으로 직접 취재했고 그 경험을 살려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잔혹함과 비인간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이전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던 공동의 가치나 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은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던(1572~1631)이 병상에 있었을 때 병과 고통과 건강을 주제로 쓴 기도문의 하나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해명, 종의 상징에 의해 중후한 맛을 주는 시이다. 그 일단을 보면 "어떤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의 소모려니 그건 나도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니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이 작품의 행간의 의미는 따로 있지만 단순히 살펴보더라도 심오하고 중후한 함축의미를 던져주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사회의 진통이 정권이 바뀌어도 멈추질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정돈이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나라꼴이 쉽사리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곳이 대립과 반목, 갈등 일색이다. 콧잔등 아물 날이 없다. 눈만 뜨면 쌈질에다 비난과 몽니와 악담들이 난무한다. 가득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른바 총질만 해 대고 있다. 자기들끼리도 파편이 어디로 튈지 모른 채 몸만 사리는 형국이다. 여야 모두가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른바 내부총질용으로 사용하는 내용을 볼라치면 등장인물들은 국민을 위하는 정치판에 나서지 말아야할 부도덕하고 몰상식한 인물들에 다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문제만 생기면 온갖 용어를 갔다 부치며 궁색한 변명과 역공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이른바 책임을 통감하거나 반성하거나 사과를 제대로 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잘못하고도 잘했다거나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은 일어나고 원인제공자는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같은 내용만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있다. 이들을 볼라치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종소리는 비극의 전조처럼 들린다.
요즘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진통을 겪으면서 서민들의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오르고 있다. 집값은 곤두박질 치고 있다. 부동산의 이상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매물이 쏟아지는데 찾는 사람이 많이 않을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사기가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다. 특히 세종시의 경우 심각하다. 그동안 땅값은 전국에서 제일 많이 오르고 아파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개발붐을 타고 기대심리가 작동한 탓도 있지만 역시 투기세력들의 준동이 이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매우 크다. 수요가 없는데도 아파트값이 치솟는 기형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 2억 원이 떨어졌다느니 하면서 가격하락 소식이 전해진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폭등소식이나 폭락 소식이나 전국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금리가 치솟으니 대출로 집을 산 서민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부동산 시장의 흐름도는 우리 사회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개발붐을 타고 도시 곳곳에서는 아파트 재건축 등이 난무하니 과잉공급에 따른 부작용 속출도 예상된다. 2007년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이 뒤엉킨 상태가 부동산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특히 세종시의 부동산 사기행각은 심각하다. 대지를 숙박용도로 속여팔고 있는가 하면 이주권을 이용한 아파트 분양사기 행각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당연히 피해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땅을 개발해 쪼개서 분양하는 이른바 기획부동산들의 사기행각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고 집중타를 맞고 있다. 각종 개발행위가 넘쳐나는 세종시와 인근 외곽지역에는 멀쩡한 산들이 마구잡이로 난개발 되고 있는 현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원주택분양이니 숙박용 분양이니 하면서 인근 공주지역의 땅까지 세종시에서 교묘하게 분양하고 있다. 이는 훗날 사기행각이 들통 날 수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버젓이 백주대낮에도 단속조차 받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이주권을 이용한 아파트 분양사기는 대전지역의 몰상식한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와 세종시의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협잡해 거간꾼들을 내세워 벌어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더하다. 20여억 원의 피해사례가 발생하고 재판을 하고 있지만 이미 돈은 날아가 버리고 난 뒤끝이다. 세종시에서 벌어지는 부동산 관련 사기행각은 도를 넘은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대목이다. 부동산 정책은 있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요즘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가 화두가 되고 있다. 추락하고 있는 지지율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제 3개월도 안된 정권을 향해 단거리 선수취급을 하고 있다. 아직도 4년 9개월 이상을 더 달려야 하는 장거리 마라톤 선수를 향해 왜 그렇게 늦게 달리냐며 안달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힘을 비축하고 장거리를 뛰는 선수답게 행동을 해야지 단거리 선수처럼 초반부터 무모하게 달리면 과연 장거리를 완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나온다. 쉽게 설명하면 그렇다. 여론조사를 한다고 나선 업체들도 공신력이나 생소한 업체들이 등장한다. 이들 업체들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대통령의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는 여론조사를 내놓고 있다. 진짜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조작적인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다. 불신도 매우 크다. 여론몰이를 하는 느낌도 떨칠 수 없다. 이른바 대통령을 흔드는 세력과 진영논리로 정치적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세력들이 알게 모르게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일부 언론들도 예외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갈지자를 걷는 메이저언론들이 대한민국의 여론을 호도하며 정도언론의 길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정말 개혁이 필요하다. 만일 여론조작이나 지지율 조작 등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세력들이 존재한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불순세력이자 나라를 망치는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 지는 불문가지이다. 반사이익을 챙기는 세력이 누구인지는 너무나 뻔한 이치이다. 대한민국을 비극으로 몰고 가려는 세력들은 척결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민중이 지팡이라는 경찰조차 과거에는 볼 수 없는 집단행동으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경찰국 신설을 둘러싸고 항명사태를 빚었다. 파국은 모면했지만 이들의 저항은 일부 기득권세력들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지탄을 받고 있다. 과거 정권에서는 정치세력의 무모한 요구에 순응하면서 순한 양이 되어 잘 따르던 집단들이 경찰국신설이란 문제가 무슨 경천동지할 일인 것처럼 선동하며 집단으로 저항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경찰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들이 순경출신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독식하다시피 하다가 무언지가 불이익이 감지되니까 난리를 피워대니 모순처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민중의 지팡이로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사는 경찰이 본연의 자세를 잃는다면 이는 불행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경찰인사도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경찰 조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경출신들이 불이익을 받는 인사구조는 차제에 대폭 개선되어 경찰민주화와 공정을 되찾아야 한다. 경찰대 출신의 7급채용은 부당한 처사다. 이는 멈추어야 한다. 이 제도의 종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지 살펴야 한다. 불공정과 비민주적인 제도라고 한다면 이 종을 울리면 안 된다.
작금에 울리는 종들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 종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종말을 고하는 비극의 울림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울림인지를 살피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 얼키고 설킨 정치와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신선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더하고 스트레스를 던져주는 트러블 메이커와 같은 인물들의 척결이나 퇴출을 원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종인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지조차 모르는 인물들이 비상식적이거나 부도덕한 모습으로 국민 분열을 일삼는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불행이자 비극이다. 국민들은 이제 희망의 종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눈물과 고통, 갈등의 추한 모습을 멈추고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라의 안정을 되찾아 국민을 위하여 희망의 종을 울리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것이 국민들이 정권을 바꾼 이유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 소설 중 가장 방대한 작품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보다 긍정적이고 원숙해진 헤밍웨이의 사회의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작품이다.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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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부추기는 자는 매국노다
대한민국이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구석구석이 갈등이 극심하다. 국회가 그렇고 정당이 그렇고 노동현장이 그렇다. 정치와 경제, 사회 구석구석이 진통을 겪고 있다. 발전과 변화를 위한 진통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막가파식이어서 우려가 큰 것이다. 갈등의 현장을 살펴보면 너무나 사리사욕과 탐욕이 넘친다. 국민을 생각하고 사회발전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성장통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아니올시다!’이다. 한마디로 죽지 아니면 까무러지기 식이니 그 폐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갈등으로 콧잔등 아물 날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국민들은 이제 보는 것도 지겹다. 여기에다 국민들을 갔다 붙이고 이 사람저사람 편들게 하면서 이전투구의 추한 현장 속으로 국민들을 몰아넣고 있다. 참으로 피곤한 족속들이다.
먼저 대한민국 국회를 보자. 공전 54일 만에 제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에 합의했지만 집안싸움과 감투싸움에 혈안이 되어 민생 등 산적한 현안은 안중에도 없었다. 물가가 치솟고 국제정세가 험악하고 모든 것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데도 상임위원장 감투싸움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신선놀음에 세월을 다 보냈다.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도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남의 탓을 말할 자격도 없는 국회의원들이 무슨 일을 잘한다고 사적채용이니 지지율이니 하면서 정부 탓을 하고 있으니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다. 국회를 공전시킨 탓을 남 탓으로 돌리면서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으니 후안무치하기 그지없다.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적용하여 세비를 모조리 회수해야 한다. 세비를 반납한다는 이야기는 조 모 의원 하나다. 나머지는 묵묵부답이다. 1,285만원을 국회 본회의 한번 출석하고 꿀꺽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뻔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말의 양심도 없는 국회의원들이다. 국민들이 어쩌다가 이런 작자들을 선출했는지 참으로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허황된 공약을 내세우며 국민을 위해 일하고 민생을 챙기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작자들이다. 대한민국 개혁의 1순위는 예나 지금이나 국회와 국회의원임을 부정할 국민들이 없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이대로는 국회가 대한민국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배경에는 여당과 야당 모두가 콩가루 집안이라는데 있다. 이들 정당들의 갈등은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여당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들이 집권당이 맞나 싶다. 대표라는 인물은 성상납의혹 등의 추잡한 의혹으로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를 받고도 전국을 순회하며 돌출행동을 일삼고 있다. 미꾸라지를 연상케 한다. 휘젓고 다니면서 흙탕물을 만들고 있다. 반성과 은인자중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성상납의혹이 없다는 식이다. 폭로자들은 각종 증거를 들이대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도 마이웨이로 달리고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공권력인 경찰이 나서서 수사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경찰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교도소를 찾아 관련자의 진술을 받고 증거를 찾아대고 있다는 말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 사건은 미적거리며 늘어질 일이 아니다. 하루속히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진위여부를 가려 피곤한 인물들의 추한 놀음에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이 이런 인물을 대표라는 자리에 앉게 했는지 비감할 따름이다. 무슨 병정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며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정당에 이런 인물이 보이는 추한 작태는 그 자체가 비극이다. 각종 분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꺼칠한 인물이 국민들로부터 무슨 칭송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자기편만을 찾아다니며 갈등을 부추기며 마치 무슨 개선장군인양 나대는 모습이 정말 식상하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이런 작자들이야말로 정치판 개혁을 위해 퇴출되어야 한다.
비슷한 인물이 야당에도 있다. 물론 하나 둘도 아니지만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청와대 대변인을 했다는 고모 국회의원이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고 하는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행각을 벌이고 있다. 시위도 정당성이 있어야 주변에서 호응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비웃음을 사게 된다. 자신은 인재영입으로 과거에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하면서 남들은 사적채용이라며 비난 수위를 높이니 이곳저곳에서 가만둘 리가 없다. 일하지 않는 국회가 일하는 정부를 나무라는 모순 덩어리를 보게 된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여도 자기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 국회의원이 세비를 반납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진정성이 떨어지고 자기편만을 내세우는 희한한 정치로 무엇인가 1인치가 부족한 인물임에도 자꾸 나서면서 입질에 오르내리니 품격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슨 자당의 최고위원에 출마해 시선을 끌려고 한다고 하지만 갈등을 조장하며 마치 자신만이 선한 국회의원인양 나서는 모습이 한마디로 어불성설이자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는 여론이 거세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사태가 파업 돌입 51일 만에서야 타결이 됐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에 따른 손실로 8천억 원, 1년 매출의 30%가 날아갔다고 추산했다. 합의서를 보면 임금 4.5% 인상에 폐업 하청업체 4곳의 근로자를 다른 곳으로 고용 승계하도록 한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것을 두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한다. 태산을 울리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움직이는데 나타난 것은 고작 쥐 한 마리라는 말로 요란하게 일을 벌였으나 별로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를 일컫는다. 공권력을 투입하느니 민주노총이 정권퇴진 운동을 한다느니 하면서 난리법석을 피우고 노노갈등, 노정갈등을 부추긴 결과가 이런 것이라고 한다며 참으로 허탈하기 그지없다. 이런 정도의 협상은 대화로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기 잡는데 함마 들고 난리를 피운 격이다. 과연 천문학적인 피해를 낳으며 이런 파업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역시 죽기 아니면 까무러지기 식이니 그 후유증은 깊지 않을 수 없다. 경영진들과 노조 등 누군가는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법과 질서, 피해에 따른 상응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노동운동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한 달로 되지 않은 지방의회도 한마디로 꼴불견이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성남시의 경우 의장선출의 둘러싸고 금품이 제공됐다는 고소장이 접수되어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섰다. 의장실을 압수수색하고 난리가 아니다. 박모라는 여당의원이 야당의원과 작당하여 제9대 전반기 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당론으로 선출한 의원을 제키고 의장으로 선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넸다는 것이 바로 고소장의 내용이라고 한다. 성남시는 시정이나 의정이나 그야말로 복마전인 것 같다. 콧잔등 아물 날 없는 성남시의 추한 모습에서 지방자치의 허상을 보게 된다. 여기뿐만이 아니다. 대전시의회도 마찬가지로 상임위원장 선거에서 야당과의 야합으로 인한 표리부동한 결과가 나와 이게 정당정치가 맞는지 지탄의 목소리가 매우 크다. 이런 모습들은 지방의회 구석구석에서 빚어졌다. 변칙과 야합, 작당의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못된 행태를 답습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당연히 자기들끼리 갈등을 빚고 있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지방의회의 추태를 감시하는 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법과 질서를 어지럽히며 감투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방의회는 분명 또 다른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행태를 근절시켜야 하고 해당인물들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화운동이 새롭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동안 갈등을 부추기던 적폐가 모조리 청산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물이든 병폐든 모든 것들이 새로워져야 한다. 고름이 살이 되지 않는다. 도려내야 한다. 인성과 품성이 그릇된 인물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윤리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수한 정치 리더들이 성문제 등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퇴출되거나 죽거나 교도소에 들어앉아 있다. 잘못을 하고도 잘못을 모르고 비리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다름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갈등을 풀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집안싸움에 혈안이 되어 민생이 거덜 나는 줄 모른다면 이는 국민불행이다. 교만과 배신의 아이콘인 베트남이 바로 경제 파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막강한 추동력을 갈등으로 낭비할 수 없다. 갈등을 부추기는 자들은 한마디로 나라를 망치는 매국노에 다름 아니다.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시점이다.
202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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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경찰관들에게 드리는 고언
나는 지금 행안부 경찰국 신설 문제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바라보고 있다.
30여 년 간 경찰에 몸담았다 퇴직한 지 5년이 지났다. 현직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보람을 느꼈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독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아 경비대장직을 대과없이 마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2011년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하여 경검간 수사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 것이다. 그때는 검찰의 지나친 독점적 수사권으로 말미암아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당시에 삭발 후 대국민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으나 주위에서 독도를 지키는 지휘관이 일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삭발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기자회견만 실시하였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최근 행정안전부에 경찰국 신설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국민들은 최근 이런 모습을 다시 지켜보면서 두 가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는 경찰은 자유와 권리의 보호 및 사회공공의 질서유지를 직무로 하는 것이 주 임무인데 어찌해서 경찰관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삭발단식까지 하고 있는지 의아해 하며 나라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 하고 있다.
또 하나는 군경은 국가안보와 사회질서의 핵심으로서 절대 흔들려서는 안되는 조직인데 정부가 출범 초 정치개혁적조처를 명분으로 왜 일선 경찰관들의 심기를 자극해서 이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는지 유연하지 못한 정부 대처도 한심하다는 반응이다. 또한 현 상황을 당리 당략적으로 이용해서 정치적으로몰고 가는 것은 안될 말이다.
워~~워~~!
이 말은 흥분한 사람이나 소를 진정 시킬 때 나오는 유행어다. 정부와 경찰은 우선 감정적으로 치닫지 말고 진정해야 한다. 국가안보와 사회질서 확립은 정부의 최우선 정책이며 그 정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것도 경찰임을 재인식 해야 할 것이다. 아직 아마추어 정부도, 자기 밥그룻만 챙기는 경찰이어서도 안된다.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거치는 순서가 있는데, 현안을 제시하고 공청회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미덥지 않거나 정책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 시범실시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이것은 어린학생들도 아는 순서인데 이러한 절차가 무시되고 장관의 입김만 작용하는 자문위원회를 꾸려서 서둘러 발표하게 하여 혼선을 빚었다.
누가 봐도 시행착오적 발상이며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느낌이다. 이렇게 해서는 길거리로 나간 경찰을 설득하기 어렵다. 설령 설득한다 해도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급한가. 급할 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울러 후배 경찰관들에게 당부 드린다. 집단행동이나 삭발 단식을 당장 멈춰야 한다! 우린 무수히 많은 정치적 역경과 사회적 고난 속에서도 오직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호국경찰의 신념으로 일해 왔다. 본인도 독도와 울릉도를 지키러갈 때 '진충보국'이라는 네글자만을 마음에 새기고 임지로 간 바 있다. 호국경찰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우리의 유일한 버팀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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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권력이 위험하다
선거가 끝나면 통상적으로 논공행상이 꼭 뒤따른다. 선거철의 공헌도에 따라 한자리를 차지하는 정무직 인사를 비롯해 공기업이나 각종 단체에 이른바 낙하산 인사가 난무한다. 특히 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막강한 조직은 곧바로 각종 자리를 차지하는 등용문으로 불릴 정도다. 여기에서 한술 더 떠 학연이나 지연, 혈연까지 겹쳐지면 선거이후에 당선자들은 그야말로 골머리를 썩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특히 선거이후를 노리는 정상모리배들이나 선거꾼들이 캠프주변을 넘나들며 얼굴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언제나 선거이후 당선인들은 코가 꿰어 이른바 노리갯감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이번 지방선거이후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취임식을 갖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빚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방권력의 새로운 탄생과 더불어 속출하고 있다. 광역이건 기초단체장이건 교육감이건 예외가 아닌 듯하다. 선거철에 지지선언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선거판의 지대한 공로자임을 내세우며 허세를 부리는 인물들로 인해 선출직들이 그야말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된다면 건전한 지방자치의 발전은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지방인 세종시에서는 초기부터 정무부시장 인선을 둘러싸고 집중포화를 맞았다. 고졸기업인 출신인 이모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은 고졸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기업을 일으키고 성공 신화를 쓴 경제전문가라고 하고 있지만 호텔분양 피해의혹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적 물의가 있다며 언론의 질타와 논란을 빚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논공행상의 후유증이 잇따르고 있다. 아마도 임기가 지속되는 한 선출직들은 각종 인사로 인한 안팎의 압력과 청탁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낙하산 인사는 물론이고 선거판을 기웃거렸던 정상모리배(政商謀利輩)들이나 저열한 선거꾼들이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범한 자치단체장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자신이 실세인양 허세를 부리며 가득이나 바쁜 자치단체장들을 사석에 불러들이는 것도 다반사라고 하니 더욱 그렇다. 한마디로 자치단체장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식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을 내세우는 것은 물론 선거철에 앞장서서 도와주었다는 것을 내세우며 고삐를 쥐고 흔들고 있다. 철퇴를 내려야할 암적인 존재들이다. 이들이 창궐하는 한 지방권력은 병들고 썩을 수밖에 없다.
그런가하면 감동적인 대화내용도 있다. “선거철에 많이 도와주어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라고 하는 모 자치단체장의 말에 화답한 다음과 같은 말이 감동을 준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저는 오로지 훌륭한 청장님이 되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부담 갖지 말고 소신껏 열심히 주민들을 위해 일해 주십시오.”라는 한 장애인리더의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논공행상이나 허세를 부리는 것조차 부끄럽게 생각한다. 물론 선출직이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은 만나 당선되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선약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은 분명하다. 어느 후보는 같은 정무직 직책을 40여명에게 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부담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순수하게 캠프에 몸을 담고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4년 동안 이어지는 후속인사를 보면 그 답은 분명히 나온다. 불협화음도 늘 동반된다. 인사 청탁이나 요구가 끊이질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선출직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여기에 있다. 대쪽 같은 인물이라면 못해먹겠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문제는 선출직 자치단체장을 쥐락펴락하며 허세를 부리는 정상모리배와 같은 인물들을 척결하는 것이다. 요즘 업무보고를 받고 새로운 직책과 진용을 갖추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자치단체장들을 사석으로 ‘오라 가라’ 하고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니는 자치단체장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지방권력의 일탈을 불러오고 자치단체장들의 소신 있는 자치행정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수렴청정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선거를 도왔다는 이유로 자치단체장들의 코를 꿰고 허세를 부리는 인물들이 창궐한다면 앞으로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부정부패와 비리로 이어지고 각종 시비에 휘말리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패가망신 당하지 않기 위해 선출직 공무원들이 더욱 철저하게 주변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금에 지난 정권의 알박기 인사가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권 말기에 단행한 공기업 등의 각종 인사가 현 정권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임기주장이 낮 뜨거울 정도다. 사실 이는 정권말기까지 이어지는 돈키호테식 논공행상의 인사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중앙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를 서슴지 않고 자행해 왔다. 그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최근에 현 정권에서도 여당 원내대표가 9급 정무직 공무원을 대통령 실에 심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새 정부도 지난 5월 10일 공식 출범했으니까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엄청난 인사가 지속될 것은 뻔하다. 아마도 한자리 차지하기 위해 물밑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중앙정치 권력의 암투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그 귀추가 주목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로 위기 상황이다. 코로나로 지친 경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물가 치솟고 금리는 오르고 서민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선진국 타령을 하며 허세를 부릴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는 여야 간 자리다툼으로 수준이하의 작태를 보이고 있다.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며 국민 혈세만 축내고 있다. 여당은 젊은 30대 대표의 성상납의혹이니 뭐니 해서 콧잔등 아물 날이 없다. 늘 내부 싸움질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형국이다. 당연히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정당의 지지율만이 아니다. 그 파편이 대통령에게 까지 튀어 대통령지지율마저 위기상황을 맞고 있을 정도이니 도대체 이게 여당이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인 세종시에서는 시당위원장 선출과 관련 추태가 연출되며 분란을 자초하고 있다. 중앙이나 지방할 것 없이 권력다툼이나 자리다툼이 극심하다. 한마디로 온통 개판인 나라꼴이다. 이대로는 파국만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새로 출범한 지방권력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방권력의 주변에서 기생하며 자치단체장들의 권위와 위상을 추락시키는 인물들을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늘공(정통 관료)’위에 군림했다. 지방권력이 갈지(之)자 걸음을 걷게 되는 부작용으로 작동해 왔다. 이런 우려도 매우 크다. 특히 지차단체장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의 창궐은 부정부패와 비리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출범초기부터 위험상황이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하는 세력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와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 물론 선출직 자치단체장의 나약한 처세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을 흔드는 불순세력들을 척결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학연과 지연, 혈연에 얽매이거나 혹시 선거철 뒷돈을 대주었다는 약점이나 명목 때문에 정실인사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이는 유권자인 주민들을 우롱하는 행태로 불행한 결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이나 선출직 공직자들은 자긍심을 갖고 지도자로서의 위상과 권위를 되찾고자 하는 당당함과 새로운 각오, 강렬한 의지가 스스로 넘쳐야 한다. 이것이 주민을 위한 길이며 위험에 빠진 지방권력을 보호하고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첩경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2-07-17